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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와역사 >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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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국가시대에 정읍시는 삼한(마한,진한,변한)중에 마한 지역에 속해 있었다. 마한은 총 54개국으로 이루어졌는데 정읍 지역에는 "고비리국(古卑離國)"과 "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이 있었다. "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은 현 정읍시 연지동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현 연지동"대실(竹支洞)"에는 토성 터가 남아 있고 조선후기에 발간된 "정읍현지(井邑縣誌:1888)"에는 "초산고성(楚山古城)"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초산(楚山)"이라는 지명은 현재까지도 정읍시에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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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국가시대에 정읍시는 삼한(마한,진한,변한)중에 마한 지역에 속해 있었다. 마한은 총 54개국으로 이루어졌는데 정읍 지역에는 "고비리국(古卑離國)"과 "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이 있었다. "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은 현 정읍시 연지동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현 연지동 "대실(竹支洞)"에는 토성 터가 남아 있고 조선후기에 발간된 "정읍현지(井邑縣誌:1888)"에 "초산고성(楚山古城)"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초산(楚山)"이라는 지명이 지금도 정읍시에 남아있다. 한편 "고비리국(古卑離國)"은 현 정읍시 고부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정읍시 지역에 있던 소국들은 백제로 통합되어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현 고부면, 영원면 지역)", "정촌현(井村縣:현 정읍시 시내, 북면 서부, 입암면 지역)", "태시산군(太尸山郡:현 칠보면, 북면 동부,산내면, 산외면, 옹동면, 태인면 남부 지역)", "빈굴현(賓屈縣:현 태인면 북부, 감곡면, 신태인읍 지역)"이 있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전국의 행정구역을 9주5소경으로 개편한 뒤, 행정구역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고쳐 "주(州)",
"군(郡)", "현(縣)"간의 조직체계를 강화하고 정읍지역을 크게 "태산군(泰山郡:현 정읍시 시내, 태인면 지역)",
"고부군(古阜郡:현 고부면, 영원면, 부안군 일대)"으로 나누었다. 백제 때의 "정촌현(井村縣)"은 "정읍현(井邑縣)으로 이름이 바뀌어 "태산군(泰山郡)"에 소속되었다. 지금의 이름인 "정읍(井邑)"이 이 시기에 비로소 지명으로 일컬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려시대의 정읍지역에는 "태산군(泰山郡)", "인의군(仁義郡)", "고부군(古阜郡)","정읍현(井邑縣)"등이 있었고 조선시대에 지방제도가 다시 바뀌어 정읍시의 행정구역은 종래의 "태산현(泰山縣)과 "인의현(仁義縣)"을 합한 "태인현(泰仁縣)", "정읍현(淨邑縣)", "고부군(古阜郡)"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후 갑오경장으로 인하여 다시 전국을 23부(府)로 구분하고 "목(牧)", "부(府)", "군(郡)", "현(縣)"의 명칭을모두 "군(郡)"으로 통일함에 따라 정읍시 지역은 "태인군(泰仁郡)", "정읍군(井邑郡)", "고부군(古阜郡)"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었다.
일제 강점기에 다시 행정제도가 크게 바뀌어 정읍지역에서도 1914년 "군(郡)", "면(面)" 통합에 따라 "고부군(古阜郡)"과 "태인군(泰仁郡)"이 "정읍군(井邑郡)"으로 통합되었으며 그 이전의 41개 면(面)을 19개 면(面)으로 통합, 개편하였다.
1930년에는 "정읍면(井邑面)"이 "읍(邑)" 승격을 앞두고 "정읍읍(井邑邑)"에서 "읍(邑)"자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정주면(井州面)"으로 고친 다음 1931년 "정주면(井州面)"이 "정주읍(井州邑)"으로 승격되었다.
1981년 "정주읍(井州邑)"이 현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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